소비 생활의 질적인 성숙에 따라 앞으로 서비스 상품이 소비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점차 확대되고, 서비스업에서의 경쟁도 심화될 전망이다. 서비스 상품이 고객으로부터 선택받기 위한 조건을 생각해본다.
최근 내수 시장이 극도로 위축되면서 서비스업은 그 직접적인 영향권 내에 들고 있다. 서비스업의 본질상 교통이나 통신과 같은 불요불급한 서비스가 아니고서는 없어도 살아가는데 큰 지장이 없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그런데, 서비스업의 이런 특성을 바꾸어 생각하면, 내수가 회복될 때 서비스업이 상대적으로 더 크게 부각될 것이라고도 볼 수 있다.
사실, 개발 도상국의 수준을 벗어나 경제가 성숙기에 접어들면 소비의 초점은 자연스럽게 제품에서 서비스로 옮겨갈 수밖에 없다. 한 사람이 수없이 많은 제품을 갖는 것은 물리적으로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또, 경제가 발전할수록 소비자들의 자아실현 욕구는 강해지며 이는 많은 부분 서비스에 대한 욕구로 이어진다.
물론 기존에 갖고 있던 제품을 더 좋은 제품, 새로운 제품으로 계속해서 바꾸는 수요는 발생한다. 그렇지만, 중국 같은 저가 제품 공급원이 부각되면서 최고급품을 제외하면 제품의 가격은 계속 하락하고 있다. 반면, 서비스업의 경우, 공급 가격은 오를 수밖에 없다. 사람에 의존하는 부분이 많고, 재고를 만들 수 없어 수입이 불가능한 점 등은 서비스업의 가격 상승을 불가피하게 만드는 이유다.
그렇다면 미래 산업의 중심이 될 서비스업에서 고객에게 보다 많은 가치를 제공하고 이를 바탕으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어떤 노력이 필요할까. 흔히, 서비스 기업의 종사자들은 친절하고 성실한 서비스를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다. 물론 친절과 성실은 서비스업의 필수 조건이다. 그러나 경쟁이 격화되고 고객의 취향은 까다로워지는 현실에서 필수 조건만으로는 살아남고 성장할 수 없다.
고객으로부터 계속적으로 선택받기 위해서는 무엇인가 확실한 강점이 있어야 한다. 그 강점은 서비스의 구체화, 표준화, 유연화라는 3가지 관점에서 생각해 볼 수 있다.
<눈에 보이는 서비스를 만들자>
좋은 서비스라고 하면 부드러운 서비스, 유연한 서비스를 생각하기 쉽다. 물론 고객을 편안하게 하고 고객의 요구에 눈높이를 맞추는 것은 서비스 사업에서 놓치지 말아야 할 포인트다. 그런데,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고객이 확실히 체감할 수 있는 구체적인 서비스를 제공해야 한다는 점이다.
서비스는 본질적으로 형체를 지니고 있지 않다. 볼 수 없고, 만질 수도 없다. 그렇기 때문에 고객은 구매 전에 서비스의 효용을 정확히 알 수 없다. 단지 여러 가지 정황으로 미루어 효용을 추정할 수 있을 뿐이다.
병원을 찾은 환자는 의사의 실력을 알 수 있는 방법이 없다. 귀한 손님을 대접하기 위해 고급 음식점을 찾은 고객은 과연 맛이 있을지 불안하다. 신제품 발표 이벤트를 준비하는 회사는 이벤트가 열리는 호텔에서 친절하고 정확한 서비스를 제공할지 확신할 수 없다. 경비 서비스를 신청한 고객은 과연 안전을 보장할지 의구심을 갖게 마련이다. 유형 상품이라면 고객의 이런 불안은 미리 떨칠 수 있다. 제품의 디자인을 보고, 기능을 테스트해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서비스를 볼 수 있고, 만질 수 있게 만든다면 고객에게 더 매력적으로 보일 수 있다. 또 이렇게 되면 고객이 서비스를 선택함으로써 부담하게 되는 불확실성을 감소시킴으로써 서비스 불량을 예방할 수도 있다. 그렇다면, 서비스가 유형 제품과 같은 구체성을 지니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 눈에 보이는 장치를 도입, 강화
미국의 렌터카 회사를 보자. 중저가 서비스를 제공하는 회사의 카운터에는 흔히 흑인이나 히스패닉 계통의 종업원들이 앉아 있다. 그러나 대형 렌터카 회사에는 말쑥하게 차려입은 백인 직원들이 있다. 또, 허름한 호텔의 안내원(Concierge)에게 근처 지리를 물으면 말로 대답하지만, 최고급 호텔의 안내원은 지도와 칼라펜을 꺼내서 알기 쉽게 표시해서 건네준다. 이런 차이는 본질적인 서비스의 품질과 관련이 없지만, 고객이 체감하는 서비스의 품질에는 작지 않은 영향을 미친다.
● 서비스를 측정 가능한 형태로 제시
단순히 빨리 배달해주겠다는 피자 가게보다는 도미노 피자처럼 30분 내에 배달이 안되면 돈을 받지 않겠다는 것이 훨씬 더 구체적이다. 그저 싸게 팔겠다는 광고보다 월마트의 365일 최저가제도(Everyday Low Price)나 이마트의 최저 가격 보상제가 더 구체적이고 효과적이다. 또 매표소나 계산대에서 정확히 처리 하고 있다는 점을 강조할 때 고객 쪽으로 향한 화면을 통해 처리하는 모습을 실제로 보여주는 것도 효과적이다.
● 대표적 서비스를 집중 부각
오래 전, 서방 세계에서는 처음으로 팬더를 들여온 샌디에고 동물원은 공원 내의 모든 시설과 서비스를 팬더라는 테마에 맞췄다. 그 결과 관람객들은 동물원을 곧 팬더와 동일시하게 되었고, 동물원의 이미지도 팬더라는 귀한 동물만큼이나 높아졌다. 또, 해양 동물 공원인 씨월드(Sea World)는 샤무(Shamu)라는 이름의 범고래를 테마로 하고 있다. 쉽게 길들여지지 않는 범고래를 쇼 무대에 올려놓음으로써 씨월드는 공원 관람이라는 보이지 않는 서비스를 범고래만큼이나 구체적인 것으로 탈바꿈시켰다.
● 서비스 브랜드의 도입
영국의 무선통신업체 중에는 ‘오렌지’라는 회사가 있다. 이 회사가 후발 주자가 선발 기업을 앞서기 어려운 통신 시장에서 놀라운 실적을 보였다. 그 이유로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오렌지’라는 구체적이면서도 생생한 이미지를 주는 브랜드의 역할도 적지 않았다고 볼 수 있다.
<언제나 한결같은 서비스를....>
싸구려 동네 식당에 가면 단골에 대한 대우와 뜨내기 손님에 대한 대우가 큰 차이를 보인다. 그러나 고급 호텔에서는 누구에게나 비슷한 서비스가 제공된다. 바로 서비스 품질 관리에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서비스의 품질이 일정하지 않으면, 평균보다 좋은 서비스를 받은 사람은 만족하겠지만, 평균보다 낮은 수준의 서비스를 받은 사람은 불만을 가질 수밖에 없다. 한 사람의 불만은 구전효과를 통해 여러 사람에게 악영향을 끼칠 수도 있다. 고객의 유지를 위해서는 불만을 갖지 않게 해야 하며, 이를 위해서는 서비스의 표준화가 매우 중요하다.
서비스라는 상품은 판매의 대상이라는 점에서는 유형 제품과 같은 의미를 지니지만, 품질 관리 측면에서는 본질적인 차이를 보인다.
먼저, 서비스 상품은 생산과 소비의 시점이 동일하므로 상품에 대한 검수가 불가능하다는 특징이 있다.
유형 제품은 생산된 제품이 고객에게 전달되기 전에 품질 검사를 함으로써 불량을 예방할 수 있다. 그러나, 서비스 상품은 미리 생산할 수 없고, 회사가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과 같은 시점에 고객이 서비스를 소비하므로 개별적인 사전 품질 검사가 불가능하다. 서비스 상품의 품질은 대부분 사후적으로 고객 만족도 등을 바탕으로 간접적으로 측정된다. 통신 상품 같은 경우 실시간으로 품질을 측정하기도 하지만, 이 경우에도 서비스 불량이 발생했다는 사실을 아는 순간, 이미 고객은 그 불량을 경험할 수밖에 없다.
또, 서비스 상품은 고객에 따라 품질이 달라질 수 있다는 특징도 지니고 있다.
진찰을 받는 환자의 태도에 따라서 의료 서비스의 품질이 달라질 수 있다. 또 승객의 태도에 따라서 스튜어디스의 서비스가 달라질 수 있다. 그렇다면 서비스 품질을 안정화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흔히 서비스를 제공하는 구성원들의 의식 개혁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물론 모든 종업원의 서비스 마인드 업그레이드는 반드시 필요하다. 그러나, 서비스 마인드가 있더라도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가’에 대한 생각이 종업원마다 다르다면 서비스 품질은 들쑥날쑥 할 수밖에 없다. 서비스 품질을 안정화시키기 위해서는 모든 종업원들이 따라야 할 행동 방식의 제도화가 필요하다.
● 행동의 제도화, 표준화
행동의 제도화를 위해서는 먼저 서비스 제공 과정을 표준화해야 한다. 고객과의 접점을 분석하여 서비스가 제공되는 주요 상황을 설정하고, 각 상황별로 표준 행동을 제시해야 한다.
예를 들면 한 신용 카드 회사는 고객의 전화를 처리하는 과정을 잘게 쪼개서 각각의 행동 매뉴얼을 만들었다. 여기에는 ‘인사를 할 때는 실제로 머리를 숙인다’, ‘기다리게 할 때는 예상 소요 시간을 이야기한다’, ‘전화를 끊을 때는 고객이 끊었는가를 확인한 후 끊는다’와 같은 세세한 사항들이 기재되어 있다. 서비스 제공 과정을 표준화하지 않고 제공하는 사람 개개인의 서비스 마인드에 의존하여 서비스 품질을 안정화시키는 것은 매우 어렵다.
서비스 표준화에서 중요한 것은 고객과의 접촉에서 발생할 수 있는 상황을 가능한 빠짐없이 뽑아내는 것이다.
● 기계적인 제도화는 지양
한편, 서비스를 표준화할 때는 표준 행동을 지나치게 기계화함으로써 서비스를 제공하는 임직원들의 자율성을 제약해서는 안된다는 점도 잊지 말아야 한다. 사람은 스스로 자율성을 가질 때 동기부여가 되고 개인적인 이익보다는 회사 입장에서 일하려고 의욕도 생기게 된다.
몇 년전 필자가 미국의 한 슈퍼마켓에서 겪었던 일이다. 우리나라의 대형 마트만한 크기의 수퍼마켓에서 몇가지 물품을 골랐는데, 그 중 설탕 대용으로 쓰는 분말 꿀에 가격표가 없었다. 카운터에서 가격을 알려주겠거니 생각했는데, 카운터에서는 바코드가 찍히지 않는다며 매장 내부의 다른 직원에게 확인을 부탁했다. 매장 직원은 상품이 있는 곳을 가보더니 가격 등록이 되어 있지 않다며 무료라고 했다. 필자는 공짜로 들고 올 수 있어서 좋기는 했지만, 서비스 표준화의 허실을 보는 것 같아 착잡한 마음도 들었다.
미국의 대형 슈퍼마켓은 종업원들의 행동에 관해 매뉴얼화가 잘되어 있는 것으로 유명하다. 예를 들어, ‘바닥에 물이 떨어지면 즉시 닦는다’와 같은 세세한 사항까지 매뉴얼화되어 있다. 그런데 이런 지나친 매뉴얼화는 종업원이 스스로 판단하고 행동하기 어렵게 하는 부작용이 있다.
중요한 사항은 표준화하면서도 서비스를 제공하는 임직원들의 자율성과 아이디어를 살릴 수 있게 하는 것, 그것이 바로 서비스 기업의 차별화 포인트다.
<서비스맨은 만능 재주꾼이어야....>
은행에 가면 가끔씩 보는 답답한 상황이 있다. 객장에는 많은 고객들이 기다리고 있고, 창구에는 행원들이 바쁘게 움직이는데, 뒷줄에 있는 중견 행원들은 허공만 쳐다보는 경우다. 예전에 비해서는 이런 경우가 많이 줄어들었지만, 아직도 없어지지는 않고 있다. 고객 입장에서는 ‘뒷줄에 있는 직원들도 창구로 나와서 고객을 상대한다면 일이 좀 더 빨리 끝날 텐데’라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다.
제조업은 재고를 가질 수 있기 때문에 급변하는 고객의 수요에 비교적 수월하게 대응할 수 있다. 그러나, 서비스업은 서비스라는 무형 상품을 미리 생산할 수 없다. 회사가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과 같은 시점에 고객이 서비스를 소비하므로, 고객의 수요가 폭주할 때는 보다 많은 서비스 인력이 필요하다. 그러나 서비스업도 치열한 경쟁에 따라 가격 하락 압박을 강하게 받게 마련이고, 많은 인력을 채용하기는 어렵다.
결국 서비스 기업이 대응할 수 있는 길은 기존의 서비스 인력이 팔방미인이 되도록 만드는 길뿐이다.
● T자형 서비스 인력
몇 년 전 인재 개발 분야에서 화두로 떠올랐던 이슈 중에 ‘T자형 인재’라는 것이 있었다. T자형 인재란 수평적으로 다양한 분야에 걸쳐 폭넓은 지식과 기술을 갖고 있으면서, 특정 분야에 있어서는 아주 전문적인 지식과 기술을 갖고 있는 인재를 뜻한다. 다시 말하면, 확실한 특기를 지닌 올라운드 플레이어라고 할 수 있겠다.
● 유연한 서비스 공급
전문화된 서비스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서는 전문화된 인력이 필요하다. 그렇지만, 특정 시간대에 몰리는 고객에 대해 조금 실력이 떨어지는 서비스 인력이라도 배정하여 덜 기다리게 하는 것이 더 바람직할 수 있다. 물론, 업종과 고객의 특성상 오래 기다리더라도 최고의 서비스를 받겠다는 수요가 더 많을 수도 있을 수 있다. 그러나, 많은 경우, 특히 우리나라와 같이 바쁘게 사는 사회에서는 조금 서비스 수준이 낮더라도 덜 기다리는 것을 선호하는 경향이 강하다. 만일 서비스 수준이 낮아질 우려가 있다면, 고객에게 사은품이나 다음 번 서비스의 가격 할인과 같은 방법으로 보상할 수도 있다.
사우스웨스트 항공은 짐 싣는데 많은 시간이 걸리는 경우, 조종사가 거들어서 빠른 시간 내에 이륙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또, 이륙 지연과 같은 고객 불만 요인이 생기면 승무원이 노래를 부르는 등의 방법으로 승객들을 즐겁게 해주기도 한다고 한다. 조종사가 짐꾼의 역할까지, 승무원이 엔터테이너의 역할까지도 하면서 본연의 업무에는 전혀 지장이 없는 이런 모습이야말로 서비스업의 성공 방향을 제시하는 모범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서비스의 구체화, 표준화, 유연화, 언뜻 생각하면 단순한 것 같지만 자사의 업종과 위상에 따라서 수없이 많은 방향으로 펼쳐질 수 있는 다양성을 지닌 서비스 마케팅의 화두라고 할 수 있다. 이 씨앗에서 어떤 꽃을 피울 지, 서비스 분야에서 강자를 꿈꾸는 기업들의 진지한 고민이 필요하다.
<출처 : LG경영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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