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용돈을 벌기 위해 구인·구직 인터넷 사이트를 뒤지던 고교생 한모군(18)은 ‘고수익 보장’이란 문구를 지나칠 수 없었다. 모집자는 한군에게 “돈을 세탁하는 일과 비슷하지만 불법은 아니다. 일당이 10만~15만원”이라며 일할 것을 권했다. 찝찝함에 망설였지만 한군은 결국 높은 일당을 거절할 수 없었다. 한군이 맡은 일은 전화금융사기로 입금된 돈을 인출하는 일이었다. 한군도 자신이 하는 일이 범죄임을 곧 깨달았지만 높은 일당이 매력적이어서 그만두지 못했다. 한군은 1주일을 일한 뒤 자신의 친구인 고교생 김모양(18)과 전모양(18)도 끌어들였다. 일은 오래가지 못했다. 한군 등은 1개월여동안 각각 수백만원을 벌었지만 한군이 일하던 금융사기 조직은 곧 경찰에 붙잡혔다. 서울 강남경찰서는 14일 한군 등을 사기 등의 혐의로 불구속 입건했다.
편·불법적인 구인·구직 사이트로 인한 피해자들이 늘고 있다. 범죄 공모자를 모집하거나 사기 대상을 유도하는 수단으로 활용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14일 경향신문 기자가 방문한 국내 최대 규모의 구인·구직 ㄱ사이트에는 부실한 공고들이 눈에 띄었다. 모집자의 이름, 주소, 전화번호와 “전화 문의 시 ‘ㄱ사이트에서 보고 전화드렸어요’라고 하세요”라는 문구가 공고 내용의 전부였다. 구직자들이 ‘주의해야 하는 공고’를 올린 게시판에는 “사기를 당했다” 등의 글도 여럿 보였다.
ㄴ사이트를 통해 재택 아르바이트를 구했다가 사기를 당한 ㄷ씨(30)는 “먼저 돈을 입금하라고 했을 때 의심이 들었지만, 잘 알려진 사이트여서 구인 공고를 믿었다”며 “내가 피해를 당한 이후에도 여전히 사기꾼이 다른 명의로 공고를 올리고, 다른 피해자들의 사례가 올라오는 것을 보면 ㄴ사이트도 대책을 마련하는 등 책임을 져야 하는 것 아니냐”고 지적했다.
상습 임금 체납업자가 버젓이 올린 공고도 확인됐다. 지난 4월 ㄱ사이트를 통해 홍보 대행 아르바이트를 했던 김모씨(26)는 임금체불을 당해 고용노동부에 신고했다. 그는 “얼마 안되는 돈이지만 못 받은 임금을 받기 위해 알바생들은 많은 노력을 해야 한다”며 “악덕업체가 큰 어려움 없이 계속해서 공고를 올릴 수 있는 구인·구직 사이트의 구조가 개선돼야 한다”고 말했다.
ㄴ사이트 운영업체 관계자는 “일정 숫자 이상 신고가 들어오면 게시물이 자동으로 보이지 않도록 하는 등 사전심사와 사후심사를 하고 있다”며 “하지만 채용공고 내용만으로 분석하는 것이기 때문에 교묘하게 다른 일을 시키는 수법 등에 대처하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이혜정 알바노조 사무국장은 “사기성 공고를 올리는 업주들에 대해 처벌할 수 있는 법적 장치를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배경내 청소년노동인권네트워크 활동가는 “알바 사이트들은 청소년들이 주로 이용해 더 취약하다”며 “고용노동부 등이 적극적으로 사전·사후 감시에 나서 피해를 막아야 한다”고 말했다.
이전글 : 
다음글 : 
